뉴스PRESSO☕세계 최고의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의 굴욕 [5월 31일]

세계 최고의 에너지 기업 엑손모빌의 굴욕
행동주의 펀드, 엑손모빌을 굴복시키다.
오늘의 뉴스레터 구성☕

  1. 엑손모빌 주총 표 대결
  2. 행동주의 펀드의 역할
  3. DJIA의 황태자가 어쩌다가..
  4. 주주 자본주의의 승리

1. 엑손모빌 주총 표 대결⚔️
지난 수요일 열린 엑손모빌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 끝에 최소 2명의 신임 이사가 회사 측이 아닌 행동주의 펀드 엔진넘버1에서 추천한 인사로 결정되었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대립을 시작해서 기록적인 주주 표 확보에 나섰던 엑손모빌 측과 엔진넘버1은 이사회 전체 12석 중 신규 선출되는 4석을 두고 경쟁을 펼쳐왔어요. 엑손모빌 경영진은 “석유 및 가스 산업의 미래는 아직 창창하고 우리는 이 산업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을 견지해왔고, 엔진넘버1은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신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에 대응할 수 있게 사업모델을 변신시켜라”라는 주장을 펼쳤었는데, 주요 기관 투자자들과 상당수의 개인 투자자들은 최근 몇 년간 저조한 회사의 실적에 실망하여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낀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번 주총까지 양측에서 직접 주요 주주들을 찾아가 회사의 전략과 비전을 설명하며 설득하고, 언론 매체를 통해 입장을 표명하는 데에 각각 3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지출하며 역사상 주총 표 대결에 가장 큰 비용을 투입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번에 엔진넘버1이 확보한 이사회 자리 수는 소수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캘리포니아 교원 연금펀드, 뉴욕 공무원 연금펀드 등 굵직한 주주들이 행동주의 펀드의 손을 들어준 것이기 때문에 경영진과 기존 이사들도 새로운 이사들이 주장하는 친환경 전략과 신재생 에너지에 관련된 투자 증대 요구를 절대로 무시할 수는 없게 된 거죠.
엑손모빌 기업 소개
 
글로벌 1위 에너지 기업으로 전 세계 석유 및 가스 생산량의 약 5%를 차지.
존 D. 록펠러의 스탠다드 오일의 후신.

사업분야
  • 원유 및 천연가스 자원 개발, 생산, 및 운송
  • 정유 및 화학물질 제조
  • 유류 소매업 (주유소)
 
사업규모
  • 매출: 1,800억 달러 (약 200조 원), 순손실 224억 달러 (약 25조 원)
  • 시가총액: 2,500억 달러 (약 280조 원)
  • 임직원: 72,000명
  • 전 세계 50여개국에서 사업 중

5/26일 주총 결과가 반영된 주가


2. 행동주의 펀드의 역할😎
몇 년 전 삼성 및 현대차그룹 승계 과정 중 발생했던 계열사 합병 시 주식 병합 비율을 문제 삼았던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기억하실 거예요. 행동주의 펀드는 일반적으로 경영상의 개선요소(문제)가 있는 기업을 공략합니다. (애플처럼 잘나가는 기업에는 현금 쌓아놓지 말고 주주에게 환원하라고 압박하기도 해요) 보통 경영진의 전략적 착오나 이사회의 방만한 운영으로 기업의 포텐셜 대비 저조한 성과를 내고 주주가치가 훼손된 케이스를 주로 공격합니다.

민주주의에서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과 정부의 장을 선출하는 것과 같이 자본주의에서는 회사의 주인인 주주가 주주총회 투표를 통해 이사회 구성원을 선출하고 이로써 경영진과 기업의 전략 및 사업의 방향이 결정됩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주주 1인당 1표가 아니라 주당 1표이죠. 지분이 클수록 의결권도 당연히 커지는 거죠. 따라서 행동주의 펀드는 다른 주주를 설득해서 목적을 달성하는데,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우선 조용히 타깃 기업의 소수 지분(~5%)을 확보한 다음, 해당 기업의 CEO와 이사회에 서한을 보내 입장을 표명합니다. 문제점을 지적하며 변화를 주문하죠. 그 일환으로 이사회 자리를 요구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이사회와 경영진은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를 무시하고 대립할지, 아니면 테이블에 앉아 적당히 타협할지를 선택합니다. 때로는 행동주의 펀드가 경영진과 싸워서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할 때는 오히려 이런 경영진의 협상 시도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2. 경영상의 문제점을 공개적으로 지적합니다. 이번에 엑손모빌의 지분 0.02%를 가지고 큰 목소리를 내어 주요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내고 상당수의 개인 투자자도 설득하는 데 성공한 엔진넘버1은 3월부터 80장에 달하는 자료를 공개하며 엑손모빌의 경영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실적 향상을 위한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기업의 경영진은 해명하며 본인들의 주장을 하게 되죠. 하지만 공격받는 입장에서 방어를 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죠. 엑손모빌 측에서 4월에 대응한 자료는 여기서 볼 수 있어요.
     
  3. 이 와중에 경영진이 물밑에서 협상하여 행동주의 펀드의 요구사항을 일부 수용하기도 하지만, 본격적으로 주요 투자자들과 위임장 확보전(Proxy Fight)을 통해 표 대결에 돌입합니다. 각종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들이 어느 쪽 손을 들어주냐가 매우 중요하지만, 개인투자자 지분 비율이 높을 경우 ISS 와 같이 이러한 판단을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의결권 자문사 의 입장도 매우 중요해집니다. (기관투자자들도 결정하는 데 있어 의결권 자문사의 입장을 고려하죠.)
     
  4. 주총 당일 개표하여 승부(?)를 가리게 됩니다.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이 어느 쪽에 동의하는지에 따라 경영진과 이사회 구성, 그리고 그에 따른 기업의 향후 행보가 결정됩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경영진이 교체되기도 하죠. 경영진 측이 이기더라도 득표율 차이에 따라 향후 행보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주주 행동주의 장점
 
엔진넘버1이 개입한 이래로 엑손모빌과 경쟁사 쉐브론의 주가 비교
  • 시장에서는 행동주의 펀드가 개입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업의 주가가 오르기도 합니다. 문제점이 개선되고 뭔가 나아질 여지가 있다는 시그널인 셈이죠.
  • 또한, 한번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게 되면, 본인들의 자리가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경영진이나 이사진 입장에서는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에요. (그래서 평소에 경영에 빈틈없이 하게 되는 좋은 효과도 있습니다.)
  • 나아가서, 기업이 자체의 잠재적 가치 창출 역량에 미치지 못할 때 원상 복구해주는 교정 역할을 톡톡히 하고요. 실제로 행동주의 펀드의 제안을 받아들여 실적이 개선된 사례도 많이 있습니다. 추가로, 공매도 전략을 활용하여 기업의 분식회계 등 사기 행각을 가장 먼저 발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에요. 행동주의 펀드는 기업사냥꾼(Corporate Raider)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 이유는 간혹(!) 기업의 본질적인 가치 증대 또는 주주의 지속 가능한 이익을 중요시하는 것보다 단기적인 차익실현을 목표로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종류의 펀드들은 어려움에 부닥친 기업의 경영진에 접근해 분란을 일으키고, 현실과 동떨어진 주주제안으로 다른 주주들을 같은 편으로 끌어들이는 등의 캠페인을 벌입니다. 설사 제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단기적인 주가 상승으로 차익실현이 가능하죠. 물론 차익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와중에 경영진이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에 대응하느라 실제 day-to-day 기업 경영에 신경 쓰지 못하게 되므로, 다른 주주에게는 손해일 수 있어요. (일부 '행동'주의 펀드들은 전체 주주의 이익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체 펀드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는 경우도 있음.)

Giphy

3. DJIA의 황태자의 몰락📉
엑손모빌은 미국 산업계를 대표하는 DJIA(Dow Jones Industrial Average, 다우 존스 산업평균지수)가 1928년 30개 기업으로 확대될 때부터의 원년 멤버로 8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시가총액(M Cap)이 가장 높은 기업이었습니다. 당시 시총 4,150억 달러 (약 480조 원) 규모에서 현재는 무려 40%나 줄어들었어요. (애플 등 테크 기업들의 폭풍 성장에 비하면 매우 초라한 성적이죠…) 전통적인 넘버 1 기업에서 그저 그런 대기업이 된 거예요. 그 결과 작년 9월에는 DJIA에서 제외되고 말았습니다.

주식 시장은 신기록을 경신하는 마당에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은 2020년 초 대비 65~95%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엑손모빌의 경우 팬더믹의 영향으로 원유 수요가 줄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러시아와 사우디가 치킨게임을 하며 유가가 급락하여 작년 중순 기존 대비 50% 수준으로 주가가 떨어졌었어요. 이때를 놓치지 않고 행동주의 펀드가 공격에 나선 것입니다.
유가와 궤적을 같이하는 에너지기업의 주가

유가의 하락과 팬데믹 등 외부적인 요인 외에도, 엑손모빌은 지난 10년간 유전 확보 및 개발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출 및 손익 증대로 연결하지 못했습니다. 쉐일 가스 사업에 뒤늦게 진출했고, 그 결과 관련 자원을 너무 비싸게 인수하는 바람에 결국 작년에 인수 건에 대한 170억 달러 (약 20조 원) 손실처리도 감수했죠.

그러는 와중에 배당금을 유지하기 위해 돈을 빌리는 상황까지 발생했습니다. 엑손모빌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장기간 보유하고 있는 주요 주주들이 배당금에 의존하는 연기금이 많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결정이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잘못된 건 사실입니다.
200억 달러 (약 20조 원) 잉여 현금 보유에서 636억 달러 (약 70조원) 채무 상태로 전락

엔진넘버1 보고서
팬데믹 전에도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팬데믹 여파로 2020년에는 사상 최초로 연간 기준 순손실을 기록하기도 합니다. 물론 향후 에너지 시장이 활황이 되고, 다른 경쟁사들이 신재생에 한눈파는 동안, 엑손모빌은 본업에 집중해서 대박이 날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지금은 많이 망가져 있는 건 사실입니다. 결론적으로 좋지 않은 경영으로 인해 행동주의 펀드에게 개입의 여지를 준 것이죠. 

표 대결에서 밀리고 씁쓸한 표정을 짓는 엑손모빌 CEO 대런 우즈
그 결과 전 세계에서 가장 전통이 있고 가장 큰 (국영 제외) 에너지 기업이 뜨내기(?) 행동주의 펀드에게 지는, 자존심 구기는 상황이 된 것이죠.

4. 주주 자본주의의 승리✌️
엑손모빌과 행동주의 펀드의 대결은 주주 자본주의의 승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이사회 2명이 무슨 의미가 있나?”라고 의아해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재벌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
?) 아래 낙하산-전관예우-거수기 이사회가 일상인 우리나라의 기업 거버넌스 문화와 달리 미국은 기업의 이사회가 경영진을 관리 감독하고, 기업의 장기적인 전략 수립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갖는 의미가 큽니다. 국내 대기업처럼 “오너”를 주축으로 의사결정이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CEO가 이사회 검토와 승인을 받고 가장 중요한 결정은 이사회가 내리는 거죠. 물론 CEO가 대표이사(이사회 회장)을 겸직하는 경우가 많고, 아무래도 파트타임으로 임하는 이사들보다는 (이사들은 보통 다른 산업의 전현직 CEO이거나 여러 기업의 이사회에 속해 있는 경우가 많죠.) CEO가 사업 현황을 더 잘 알 수밖에 없기 때문에 CEO/ 대표이사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이사들 또한 열심히 일을 합니다. 이사들은 주주의 이익을 대변할 법적 책임이 있고 이를 등한 시 했을 때 법적 책임이 막중해요. 경영진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거나 주요 의사 결정 과정에 충실히 임하지 않아 주주가 손해를 보면 민사 소송은 물론이고 감옥에도 갈 수 있다는 거예요.

이러한 시장의 메커니즘 속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건전한 백신 또는 치료제 역할을 할 수 있고, 그로 인해 기업의 실적이 개선되고 주주들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위대하다고 볼 수 있겠죠. 실제로 에너지 기업들이 본연의 업에서 벗어난 신재생 에너지 사업을 하는 것이 맞는지, 현실적으로2040년 혹은 2050년까지 탄소배출을 0으로만들 수 있는지, 또는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지는 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주주들은 이번에 엔진넘버1 펀드의 손을 들어주며 엑손모빌의 주인으로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이걸 가능하게 해 준 것이 주주 행동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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